2024년 5월 14일
KAFSP 강화도 유적지답사 및 평화전망대 안보견학


김포지역 근대화를 이끌었던 기독교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고 후대에 그 가치를 전하기 위한 최초 개신교 교회가 들어섰던 걸포 중앙공원을 찾았다.
걸포 중앙공원에는 두개의 주탑과 낮은 기둥의 석재로 완성된 언더우드 기념비는 우리나라 전통의 싸리문과 기독교 상장물인 가시관에 조형미를 더해 동서양의 조화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근대화를 위해 행했던 봉사와 희생, 개항도시 김포 역경의 역사와 불굴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 기념비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8·4 DMZ작전 상징 조형물인 '평화의 발'을 제작한 왕광현 조각가의 작품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에 위치한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는 군부대 전용시설로 북한의 정경을 500M 근접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는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 염원소 역할을 한다.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한 자료와 6.25 전쟁 당시의 배경과 그 이후의 피해 상황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3층의 전망대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북한의 산하를 볼 수 있고. 또한 야외에는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를 올릴 수 있도록 망배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김포 최초의 개신교회인 김포읍 교회는 1894년 3월 3일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처음 교인들은 8명이었고, 모임장소는 걸포리 304번지에 있는 유공심의 집이었다. 1905년 3월 언더우드가 북변리 264번지 땅 3,500평을 기증하자 교인들은 그 해 9월 700원을 헌금하여 그곳에 33평의 예배당과 15평의 목사관 그리고 12평의 교육관을 건축하였다

대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초지진은 성곽의 둘 레가 500m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방어시설이다. 조선 말기, 한양으로 향하 는 적군의 침략을 저지하 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 사건(1875년)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관군의 붉은 피가 물들었던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는 성곽이다 . 당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은 성곽 입구의 소나무의 포탄 흔적이 되어 아직도 남아 있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에 세워졌던 초지진은 수많은 전투 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곽 안으로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대포는 조선시대 후기 사용되었던 실물이다. 당시의 대포로서 가장 대형 규모인 2.5m 길이의 홍이포로 일제 관리 사택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제자리로 찾아 옮긴 것이다.
성공회 성당 한옥 2층
성공회 성당은 1900년 초대 주교가 지은 건물로 한옥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얼핏 사찰처럼 보이지만 이는 성공회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선교지의 전통과 문화를 수용한다는 성공회의 방침으로 지어진 듯하다.
성당 현판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고 쓰여 있다. 또 내삼문은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이는데, 종에는 성공회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동양과 서양 건축양식을 융합한 분위기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흰 돌로 만든 커다란 비석 같은 세례대가 있고 여기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신을 닦고 마음을 씻으며, 악을 떨쳐 선을 행한다’는 뜻이란다. 목조가옥과 어우러진 내부의 등과 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성공회 건물은 영국사람이 설계하고 건축하였다고 한다. 문짝도 영국에서 제작하여
가져왔다고 하는데 10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뒤틀림이 없이 잘 맞는다고 한다
100년이 넘은 이 성당은 아직도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KAFSP 일행들은 잠시 성당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당 입구에는 교인들의 세례명이 적힌 카드가 책장 가득 꽂혀 있었고. 성당 건물과 같은 시기 지어진 사제관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사제관 역시 한옥 양식을 그대로 따른 건축물이다.
기독교계에서 한국 초기 선교의 역사와 토착화된 교회 양식을 담고 있는 이 성당을 원형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한다